real story [ 26. 난치병을 낫게 한 기도 ]

간증

 

어차피 한 번 살다 죽는 허무한 인생, 부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그것만이 최고의 삶이라 생각했다. 2011년 11월 큰아들을 따라 처음으로 교회를 방문했다. 그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믿으면 인생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음을 깨닫고, 정식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2012년 3월에는 성경공부 과정을 모두 마치고 수료식까지참여했다. 둘째 아들과 막내아들도 전도해서 함께 교회를 다니게되었다.

 

20대부터 늘 두통을 안고 살았기에 항상 두통약을 복용했다.

그해 5월부터 강한 두통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병원에서CT 촬영을 했다. 의사는 뇌 주름이 없어지고 있어서 빨리 치료를하지 않으면 암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처방에 따라 많은 약을 먹었지만 통증은 계속되었다. 다른 약도 먹어 봤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두통으로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었다. 잠이 들면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매일 아이들이 목과 어깨를 마사지해 주어도 깨어나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두통을 참으며 교회를 다니던 11월 1일 금요일, 총회장 목사님 설교를 영상으로 보고 있었다.

영상 설교 중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아픈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시며 “오늘은 내가 아픈 자들을 위해서 꼭 기도해 주겠습니다.” 하셨다.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총회장 목사님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 그때, 누가 옆에 와서 내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이었다. ‘혹시 머리카락이 내려온 건가?’ 하고 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 봤다. 순간 따뜻한 사랑의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주님이 오신 것이느껴졌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것이 깨달아졌다.기도를 받는 영적 체험을 한 뒤, 매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고, 두통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할렐루야!

 

교회에 다니기 전에는 알러지 증상도 심해서, 10여 년 간 괴로워했었다.

교회에 다닌 이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증상이 사라졌었다.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영적인 체험을 한 후 오래도록 고치지 못했던 두통까지 사라지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큰 표적이었다. 기도가 아니었다면 병원에서도, 큰돈으로도 고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뇌압이 높고 혈관이 얇아서 만일 뇌출혈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없는 상태였다고 한다.최근까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남편도 마음을 열고 있다. 영적으로 구원해 주시고, 육적 고통에서도 해방시켜 주신 주님께 진정 감사드린다.

 

간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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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 25. 주님은 나의 생명 ]

1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전에는 빵집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서울 송파역에 위치한 3층 건물로 송파구에서 제일 큰 매장이었다. 근처에는 전철역과 버스정류장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고, 매장 주변으로 초·중·고등학교가 6개나 있어서 손님이 매우 많았다.

 

 

2010년 7월 15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7시에 출근했다.

평소 같았으면 샌드위치를 만들고, 빵 진열대도 정리해야 했고, 아침부터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카운터도 봐야 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안 잡혀서 1, 2층 매장을 계속 오르내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언니도 속으로 ‘얘는 쉬는 법이 없이 일하는 앤데, 오늘은 이상하네… 왜 그러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손님도 거의 없었다. ‘이럴 때 잠깐 더 쉬자!’ 하며, 언니와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쾅!!!!!!” 하고 귀청이 터질 듯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승용차 한 대가 매장의 대형 전면 유리를 뚫고 들어와 있었다. 1층 전면 유리가 내려앉아 버렸다. 우리는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못하고, 망연히 사고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매장은 8차선 도로가 있는 횡단보도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골목에서 승용차가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빵집으로 돌진한 것이다. 대형 유리창이 다 깨져 내려앉고, 벽돌이 무너졌다. 홀에 있는 테이블뿐만 아니라 유리로 된 케이크 냉장고까지 부서져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승용차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대리석 테이블, 유리로 된 냉장고가 카운터 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평소처럼 빵 정리를 했거나, 카운터에 있었더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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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고 아찔하여 ‘주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하게 된다.이날 사건은 저녁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사연을 들은 쌍둥이 여동생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교회에 나왔고, 그 뒤로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주님께서 항상 나를 지켜보시고 보호해 주시며 감동으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이 항상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주시니오직 감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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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24. 5분, 그 찰나]

간증

 

2013년 6월 21일, 대학 기말고사를 치르기 위해 10시까지 학교로 가야 했다.

 

8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하면 시간이 딱 맞는데, 이상하게 이날은 준비를 일찍 마쳤다. 항상 5분씩 늦는 버릇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늘 참아 주시던 엄마도 이날은 빨리 나가라며 계속 재촉하셨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이 8시 30분쯤이었다.

20m가량 걸어서 신호등을 건너고, 2분 정도 걸어가고 난 뒤에 ‘쿵’ 소리를 들었다.뒤돌아보니, 24톤 덤프트럭이 우리 집 앞쪽 건물을 들이받아 건물 1층 상가 4개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집이 바로 언덕 아래 지점에 있었는데, 언덕 꼭대기 공사현장에서 짐을 싣고 내려오던 덤프트럭이 브레이크 고장으로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건물로 돌진한 것이다. 너무 깜짝 놀랐지만, 기말고사를 치러야 했기에 발걸음을 돌려 서둘러 학교로 갔다.

시험을 마친 뒤에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고, 사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정말 다행이다.”라고 하셨다. 주님께 감사드리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복구가 되어 사고가 난 것조차 실감 나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사고 영상을 찾아봤다. 뉴스 속의 영상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덤프트럭이 가속이 붙어 빠른 속도로 내려와서는 그대로 건물을 들이받았다. 사고 직후 건물 모습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과 같았다. 영상을 보니, 내가 정말 죽을 고비에서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주님께서 생명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더욱 놀라웠다.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셨지만, 육신의 생명도 항상 지켜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인생들의 크고 작은 상황 가운데 항상 함께하시며 보호해 주심을 깨닫고 감사드린다.

간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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